[영상_2013.04.10] 강정과 쌍용은 하나다! 평화바람 활동~

강정과 쌍용이 같은 시기에 경찰의 강경책이 떨어졌다. 쌍용은 김정우지부장, 강정은 범대위 공동대표 배기철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해군기지 업체직원이 경찰처럼 협박한다. 경찰은 이들의 용역처럼 방관하며 채증에만 열을 올린다. 거꾸로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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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기행] 오키나와에서 보낸 한 철 _ 딸기 평화바람 활동~

오키나와에서 보낸 한 철_딸기 일정 정리 보고서

 

 

::: 2/15(금)

12시 45분 나하 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평화바람 식구들만의 여행이 처음이라 다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왔습니다. 한국과는 무려 20여도 차이가 나는 따뜻한 남쪽의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공항을 벗어나니 멋진 집회 차량이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중을 하려고 공항에 일부러 나온 오오무라아저씨와 유리씨를 만나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멋진 방송차에 올라타고 후텐마기지 앞으로 향했습니다.

후텐마 기지 앞 방문

Hey, Yangkee boy! Get Out!!!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들과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기지에서 나오는 미군들에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NO OSPREY! NO RAPE! NO BASE!

은퇴한 어르신들과 종교인들, 주부들이 앞장서서 기지앞 항의행동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주민들은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저희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 왔습니다. 오스프리는 ‘미망인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빈번한 추락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미군의 문제적 헬기입니다. 연구단계에서부터 실전에 배치된 현재까지 추락사고로 인해 3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헬기는 전쟁에 배치돼 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쟁무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헬기가 후텐마기지에 배치된다고 하자 오키나와현민들의 전폭적인 반대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오키나와는 일본 전체 면적의 1%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 미군기지의 80%가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후텐마기지는 기노완시 면적의 25%를 차지한 채 오키나와 주민들의 삶에 많은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미군에 의한 여성 폭력, 헬기 추락사고, 소음문제등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키나와주민들은 후텐마 기지의 철수를 요구해 왔고 이에 대해 미국은 후텐마기지의 철수가 아닌 헤노코로의 이전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스프리가 배치되고 있는 상황이지요. 철수를 요구하는 주민들에게 위험한 전쟁무기를 배치하는 이런 상황은 전체 오키나와 주민들이 한 목소리로 오스프리 반대를 외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데나정 방문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 공군기지입니다. 3000미터급 활주로를 보유하고 100여대가 넘는 전투기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때는 전쟁을 위한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가데나기지에서 출격하기도 했습니다. 상시적으로 이착륙하는 전투기들 때문에 주민들은 일상적인 전투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에선 이러한 소음을 ‘폭음’으로 규정해 말합니다. 그리고 인근은 미군들의 탄약들을 저장하는 저장고가 밀집되어 있어 아시아 최대의 화약고라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가데나정의 작은 휴게소에는 기지에 대한 자료를 모아놓은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선 가데나정에 미군들이 상륙했던 것부터 시작해 현재의 폭음 문제까지 누구나 알기 쉽게 전시해 놓고 있었습니다. 해안으로 상륙했던 미군들이 주민들의 농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그 가운데 활주로를 건설해 현재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영상, 사진 자료들이 풍성했습니다. 한국은 그 어딜 가도 이러한 공공시설은 없습니다. 안보를 위해서 주민들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풍토가 만연한 한국의 상황은 오키나와와 참 대조적입니다.

환영회

요미탄촌 누가야에서 첫 환영회를 가졌습니다.

민박집 주인장인 치바나 쇼이치 선생님과 나베시마 아저씨, 긴조미노루 선생님, 미키짱등 요미탄 주민들이 함께 환영해 줬습니다.



::: 2/16(토)

요미탄촌에서 기지가 반환되어 새롭게 신도시가 건설되는 곳들을 잠시 살펴봤습니다.

공설시장 둘러보기

오키나와 국제거리를 둘러보며 쇼핑과 문화 체험^^

 

러브 오키나와 관람

후지모토 유키히 감독의 러브 오키나와를 단체로 관람했습니다. 오키나와의 반기지 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타큐멘터리 였습니다. 후텐마, 헤노코, 다카에에 이르는 주민들의 투쟁을 한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비록 일본어로만 되어 있었지만 우리들과 비슷한 투쟁상황들이 펼쳐지는 영상을 보고서도 상황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과의 대화
영화가 끝난 후 다카에에서 온 이시하라씨, 감독님 그리고 영화를 함께 봤던 관객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시하라씨는 현장에서 주민들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며 현장으로 와 달라고 연대를 호소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을 찬성과 반대로 나누는 그런 시대에 함께 손을 잡고 연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2/17(일)

요미탄촌 둘러보기

우리들이 머물렀던 숙소인 요미탄촌은 오키나와 전쟁의 역사적 현장이자 평화운동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요미탄촌 주민센터에는 비무장 평화를 명시한 ‘헌법 9조’의 내용이 비석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건물 위에는 ‘오스프리반대’라고 쓴 큰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신청사로 이전하기 전에는 요미탄촌 공무원들이 직접 제작한 대형 간판에 평화헌법 9조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왜 오키나와에서 ‘평화’가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897년까지 ‘류큐왕국’으로서 독립된 나라였던 오키나와는 군대가 없고 무장을 하지 않는 왕국이였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죠. 그러나 일본에 의해 식민지가 되고 이후 창씨개명, 신사 건립등을 통해 독립된 문화가 말살 되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당할 당시 이뤄졌던 황국식민화 교육이 오키나와에서도 똑같이 진행됐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일본은 천황을 위한 명예로운 죽음에 대해 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비겁하게 살아 남는것 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해야 한다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교육했다고 합니다. 1945년 3월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합니다. 일본과 미국의 지상전이 오키나와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미군이 상륙한 요미탄촌에선 주민들이 가마(동굴)로 숨어들었습니다. 좁은 동굴에 숨어든 주민들은 미군들이 상륙해 나오라고 주민들을 회유하자 그 속에서 어머니가 자식을 죽이고, 친척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요미탄촌 치비치리 가마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140명의 주민중 82명이 이렇게 죽게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명단에는 2살, 3살의 어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전역에서 이러한 비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군국주의 교육의 비극. 치비치리 가마 앞에는 다시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 섞인 비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키마 미술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는 한국과 다르게 임대계약을 통해 미군에 토지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주들은 반전지주회란 단체를 만들어 기지에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운동을 해왔고 사키마씨는 결국 토지의 일부를 반환 받았습니다. 반환받은 토지에 세운 것이 바로 이 미술관입니다. 사키마미술관에는 오키나와 전쟁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 1년 내내 전시되고 있습니다. 미군의 상륙에서부터 피난, 동굴에서의 죽음등이 한 벽면을 가득 매운 그림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 옥상에는 일본이 패망한 6월 23일을 기억하며 23개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전쟁을 기억하는 동시에 같은 비극을 겪지 말자고 이야기 하는 사키마 여사의 말소리가 힘차게 느껴졌습니다.

 

강정마을 투쟁 상황 보고 대회

오키나와의 평화 운동가들이 함께 모여 강정마을의 투쟁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비무장 평화의 섬’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또한 헤노코의 아시토미 히로시씨가 특별 보고로 헤노코의 현재 상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기도 했습니다. 일요일 임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뜻깊은 자리였고 특히나 강정마을의 투쟁에 대한 관심이 대단해 놀라웠습니다.



::: 2/18(월)

 

긴조 미노루 선생님 아뜰리에 방문

긴조미노루 선생님의 아뜰리에에 방문했습니다. 오랜시간 오키나와 전쟁에 대해 작품을 만들어 온 선생님의 작품이 작업실 옆 작은 정원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징집되어 오키나와에 온 조선인의 모습을 형상화 한 ‘한의 비’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오키나와에는 욘나손에 한국에는 양양에 같은 작품이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마치 쌍둥이 처럼 닮은 문정현신부님과 긴조미노루 선생님의 유쾌한 만남이었습니다.

평화자료관, 한국의 탑

오키나와 전쟁의 과정과 현재에 대해 전시되어 있는 평화기념자료관을 방문 했습니다. 이곳에는 박정희가 세운 한국의 탑이 있었습니다. 조선에서 징용돼 오키나와 전쟁에 투입되어 희생된 조선인들을 기리는 탑이지만 실상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의 산물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공원에 앉아 강정에서 부른 노래를 일본어로 개사해 노래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자료관 탐방에 나섰습니다.

자료관은 2층으로 이뤄진 대규모 전시실이었습니다. 오키나와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그 후 전쟁에 휘말리고 미군들의 지배를 받기까지의 상황이 자세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1897년 '류큐 열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일본에 의해 문화 말살 정책이 시행됩니다. 그후 1944년 일본군들이 오키나와에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1945년 3월 미군의 상륙이 시작된 후 20만의 희생자가 발생하는데, 12만명이 오키나와 현민, 6만명이 일본군, 1만명이 미군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등 다른나에서 징집되어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가 1만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일본내에서 유일한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에서의 민간인 희생과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패망 후 일본과 오키나와는 미군정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일본은 1952년 독립합니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미군고등판무관이 절대적인 힘을 갖는 미군정이 1972년까지 지속됩니다. 이 시기동안 1950년대에는 일본군이 사용했던 기지와 민간인들의 토지가 강제로 군기지로 수용되었고 미사일, 원자력잠수함등의 배치로 핵기지화 되기도 했습니다. 또 1958년 베트남 전쟁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폭격기들이 출격하고 각종 물자의 보급이 이뤄지는 미군의 핵심 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수록 오키나와 현민들의 기지 반대 투쟁도 거세져 1970년 ’고자시‘에선 미헌병의 발파사건에 저항해 차량 방화가 이뤄지고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오키나와주민들은 빼앗긴 토지를 찾기 위한 운동,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을 펼쳐 나갑니다.   1972년 주민투표로 일본으로의 복귀가 결정되었고 미군정은 철수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군기지는 오키나와 주민들은 결정에 참여하지도 않은 일미안보조약으로 인해 유지되게 되었고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매우 비슷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길을 선택한 오키나와 주민들과 달리 한국은 아직도 안보, 무장의 논리가 팽배한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일을 겪고도 서로 다른 길을 걷는 한국과 오키나와.

 

후텐마기지앞 가스펠 집회

매주 월요일 후텐마기지 앞에선 기독교 목사님들과 지역주민들이 성가를 부르며 모임을 갖는다고 합니다. 이날은 가스펠 집회에 참석한 우리들도 일본어로 계사한 ‘강정아’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또 오사카에서 오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도 함께 했습니다.



::: 2/19(화)

 

헤노코 방문

오키나와 북부 지역으로 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을 달려 나고시에 위치한 헤노코에 도착했습니다. 헤노코에 방문한 우리들은 농성 천막에서 아시토미 히로시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헤노코의 싸움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 후텐마기지의 이전 지역으로 헤노코가 거론된 후 주민들은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주민투표까지 거쳐 반대입장을 냈지만 당시 나고시 시장은 주민의견을 무시하고 기지 찬성입장을 발표한 후 사퇴했습니다. . 이때부터 시작된 기지 반대운동은 3년전 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사람이 시장이 될 정도로 나고시민 전체가 지지하는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3년에는 민주당 하토야마 정권이 후텐마기지의 현외 이전 혹은 해외 이전을 슬로건으로 당선될 정도로 중요한 이슈가 되었지요. 그러나 민주당내의 보수 세력과 미국의 압력으로 오키나와 현외 이전이 좌절되고 일본정부는 후텐마기지의 헤노코 이전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현의회 만장일치로 헤노코 이전에 반대하고 있으며 자민당, 공명당, 민주당 모두 중앙당의 입장과 별개로 헤노코 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16년간의 투쟁을 거쳐 신기지 이전 반대가 현민 모두의 입장이 되었다는 아시토미씨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2004년엔 일본정부가 강행하려던 공사를 헤노코의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이 해상에서의 비폭력 저항을 통해 저지한 것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현재는 헤노코에 기지가 들어오는 것에 대한 반대 뿐 아니라 후텐마기지의 폐쇄, 오스프리반대를 함께 외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방문했을때 환경영향평가법상의 절차가 끝났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오스프레의 배치가 전재되지 않은 환경영향평가는 위법이라는 취지의소송을 진행중이라고 했습니다. 16년을 싸워온 헤노코의 주민들은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운동을 해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길고 긴 투쟁입니다.

다카에 방문

헤노코에서 다시 차를 타고 1시간, 다카에에 도착했습니다. 얌바루라고 불리는 북부 밀림지역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사용하는 식수원이 있고 각종 희귀식물들이 서식하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 기지가 들어선다고 해 시작된 이 투쟁이 벌써 7년째입니다. 우리들이 다카에에 방문한 날은 마침 다카에 주민들이 재판으로 인해 2시간 이상 떨어진 나하시에 나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는데, 본토 혹은 오키나와 시내에서 다카에에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건 이후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가 오키나와의 기지 문제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처음 다섯 가구가 싸우던 다카에의 투쟁에 이제는 지역 주민 뿐 아니라 오키나와, 일본 본토의 사람들도 결합하고 있었습니다.

다카에에 지어지는 기지는 헬리포트라고 불리는데 미군들이 헬기로 이 지역에 들어와 정글에서 서바이벌 훈련을 하는 일종의 훈련장을 만드는 계획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미군의 정글훈련장이 이곳 다카에에 있는데, 이미 15개의 훈련장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6곳을 추가하려해 2007년부터 농성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작년부터 본격화된 공사로 인해 주민들의 저항도 격해져 6곳의 공사장 입구를 막아 놓고 농성과 연좌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한곳에 대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기존에 있던 기지 입구를 통해 공사가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공사장 정문은 마을주민들과 지킴이들이 막고 있기 때문에 기지를 통해서만 공사지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이 기지 앞에서 감시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사방해 소송을 걸었고 현재 재판 중입니다.

이날 다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각자 음식을 해오거나 야채들을 가져와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노래와 춤으로 함께 한 이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오랜 투쟁속에서 지칠법도 한데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어서인지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강정마을의 투쟁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그런 밤이었습니다.



::: 2/20(수)

다카에 집회

하루를 다카에에서 자고 새벽 6:30 공사장 정문으로 갑니다. 기지앞에서 감시활동을 하는 주민들과 함께 감시활동을 하고 주변 산들을 둘러 봤습니다. 안개가 낀 산은 그야말로 첩첩산중, 끝없이 나무가 우거진 밀림이었습니다. 기지가 없었다면 농사짓고 조용하게 살아왔을 그런 마을이 투쟁의 한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온나손 한의 비 방문

긴조미노루 선생님이 한국에서 징용된 조선인을 생각하며 만든 한의 비를 찾아 갔습니다. 한 독지가의 기부로 땅을 겨우 얻어 한의 비를 건립했다고 합니다. 그 옆에는 당시 징용된 조선인 남자와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건너온 여성들을 위로하는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들의 옷자락을 잡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눈빛 위 귀신같은 군인이 총부리를 휘두릅니다. 조선인 남성의 눈은 가리워진 채 손도 묶여 있습니다. 전쟁의 비극을 한의 비를 보며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 2/21(목)

요미탄촌 자전거 하이킹

요미탄촌은 곳곳에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적지와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명합니다. 숙소가 있던 요미탄촌 누가야 근처에서 자전거를 렌트해 하이킹을 했습니다.

 

::: 2/22(금)

시내나들이

교류회

 

::: 2/23(토)

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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